갑상선암 수술 마치고 제주도 자택으로 #10-2

이어서 쓴 글이기 때문에 앞부분을 읽어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클릭~#10-1

동위원소 치료 준비를 위해 먹은 아보카도 토마토 그리고 녹보수

항암치료 일주일 전 저요오드 식단을 조절하면서 갑상선 약도 끊었다. 갑상선 수치가 저하로 떨어질 당시 더 이상 휴학을 못하고 주리에 교수의 ‘행복심리’라는 과목을 신청했는데, 이 시기가 시험 기간이기도 했다. 답답했던 투병기간을 행복심리수업으로 버티고 있었다. 피로와 짜증이 쌓인 항암 일주일 전 친정엄마와 동생은 얼굴을 보자고 했다. 요양병원과 동생 집이 가깝거나 저 요오드식을 해야 해서 식당도 못 간 상황이라 동생 집에서 간단한 다과를 하기로 했다. 동생 차를 탄 나는 말이 없었고, 원래 가족들도 별다른 말 없이 동생 집으로 향했다. 전 가족은 어색하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한쪽 벽 코너로 가서 지갑을 열고 오만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냈다. 며느리 돈봉투였다. 나는 아들 앞인데 뭘 숨어서 돈을 꺼내느냐고 꾸짖는 순간 동생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엄마 마음대로 하게 놔라고 소리쳤다.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너희 집에 갈 기분이 아니다라며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친정엄마는 쫓아와 말렸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았다. 동생이 따라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목청껏 힘을 준 채 온 힘을 다해 욕을 했다. “미친 놈!” 나를 잡는 엄마를 보며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무작정 걸었다. 동생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걸었더라면 동생도 피곤했을 것이다.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육지에서 혼자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있다는 압박감이 쌓였음을 이날 동생은 아침부터 어머니와 병원을 다녀온 곳이기도 해 피로가 폭발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다시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혈연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돌아서 동생을 향해 미친 놈이라고 욕했을 때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욕을 했더니 기분이 좋았다는 거야.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체면을 중시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싸울 줄도 몰랐어. 화가 나는 것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화살을 나에게 겨누었다. 암을 늦게 발견한 것도 신체화 증상은 마음에서 온다고만 착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미술치료사라고 밖에서도 집에서도 점잖은 척 가면을 쓰고 있었다. 험담을 싫어하고 청렴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남편과도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언젠가 남편은 내 앞에서 남흉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남을 욕하지 말라고 단죄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 둘이 있을 때 몰래 욕하자. 실컷 욕하자!” 5년 넘게 주말 부부였다.지난 7월 말 암 진단을 받았고 이틀 만에 남편이 육지 일을 그만두고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갑상선암을 기록하고 치유 작문으로 나누고 있습니다.궁금하신 점은 댓글 남겨주시고 상담도 가능합니다.

덧붙여서, 위의 게시물은 1년 전의 갑상선암 수술 이야기입니다.수술한지 꼭 1년이 되는 오늘 제주도 선녀탕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했습니다.물속의 물고기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체력이 많이 올라왔어요. 물론 밤이 되면 체력이 떨어져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체력 관리에 힘쓰기 때문에 수술 전과 거의 같습니다. 살찌는 것만 빼고. 대사가 늦었어요.

규생, 기자미

아이가 찍은 쥐꼬마 스님으로 추측

생물도감까지 찾는 걸 보니 저는 바닷속 동물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우리 이웃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 그리는 제주 레비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