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성 습관에 대하여 한/중/일/영 아나운서

이 글에서는 언어별(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아나운서의 발성 습관에 대해 알아본다.

내 본업은 텍스트를 가공하거나 분석하는 일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음성학, 음운론, 발성 관련 자료를 많이 찾고 있다. 음성언어 발달이 좀 늦은 내가 낯선 분야를 정복해 가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컴퓨터 구조수업 시간에 교수가 발표를 듣고 너는 목소리가 재능이니 잘 키워라. 그러면 코딩 안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조언을 들었고 이후 더욱 관심을 갖고 연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별/나라별 음색 차이는 존재하는가?’민족별’ 발성의 차이의 연구는 특히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반 터부시되고 있어 극히 불손한 목적의 연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행해진 모든 우생학 관련 연구와 의도적으로나 결과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하기 위해 없는 미세한 차이를 일부러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발성은 음성 장애의 치료나 음악의 발성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 간 발성 습관의 차이를 의미 있는 주제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후천적 습관에 초점을 두고 연구한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여지는 적다고 본다.

만약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아래의 영상을 보자.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어울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해당 민족집단의 발성 습관을 닮아가는 것이지 이를 지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종차별과는 무관하다고 미국 흑인이 직접 주장하는 내용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출처는 여기) 언어별로 평균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목소리의 높이(pitch)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일부 현저히 낮거나 높은 목소리를 사용하는 언어는 분명히 있다. 한국어는 영어와 비슷하며 중국어와 일본어보다는 현격히 낮다. 당연하지만 각국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언어별로 세부적인 ‘방송용’ 발성의 차이를 살펴보자.

영미권 아나운서의 발성은 시대별/국가별로 트렌드가 존재한다. 영어권의 경우 20세기 초 라디오 방송이 처음 보급됐을 때 저주파를 잘 살리지 못해 전반적으로 다소 높은 톤의 발성이 유행했다. 특히 영국의 교양인이나 귀족계층은 Conservative RP화자로서 비음이 약간 섞인 음성구 위주의(breathy) 발성으로 말하는 유행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한때 교양 있는 발음으로서 취급되었던 Transatlantic accent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발성은 1950년대 말을 기점으로 음향송출 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발성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방송에서 먼저 사라졌다. 월터 크롱카이트도 중저음 중부 억양으로 유명해진 방송인이다. 이후 영국에서도 상류층이 서민적인 억양에 가깝게 언어를 갈고 닦으면서 가성 위주의 발성은 영미권 방송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오늘날 미국 아나운서는 입천장을 상승시켜 후두를 하강시킨 상태에서 횡격막 호흡을 통해 호흡을 풍부하게 올리고 성대 접촉률(closed quotient)을 높인 상태에서 말한다. 피치를 올리거나 낮출 때 약간의 삐걱거리는 소리(vocal fry)가 섞이기도 한다. 굳이 실용음악에서의 발성에 비유한다면, 흉성에 속하고, 고음부에서는 두성이 약간 섞인다. 이러한 방송용 발성법은 비백인이 들었을 때 ‘백인 발성’에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으며, 이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링크)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의 발성은 이 정도로 성대 접촉이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숨소리가 적고 ‘vocal fry’가 꽉 찬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많아 혹은 성대 접촉은 순조롭지만 상인두강에서 공명점이 올라가고 코가 울리는 듯한 발성을 하는 사람도 많다. 기자나 군인, 정치인이라면 몰라도 공적인 상황에서 아나운서는 이렇게 발성을 잘 하지 않는다.

미국 아나운서는 전반적으로 고저장단이 일반인의 발화보다 두드러지게 말하고 천천히 말한다(반면 일반 미국인은 저음 중심으로 빠르게 말한다). 음계로 말하면 4, 5개의 음을 오가며 말하라고 교육하는 곳이 많다. 미국 아나운서의 말투는 어머니 말투(motherese)와 의외로 닮은 측면이 많다. 이는 정확한 의사 전달, 카리스마 확보, 청자에 대한 친절성 표시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Gasser et al., 2019).

현대 영국 아나운서들은 옛날처럼 비음이 있는 가성 중심으로 발성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미국에 비해 다소 속도가 높다. 또 미국에 비해 스태커트 호흡을 주로 사용해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밖에 영미 국가들에서의 목소리 피치 차이는 아래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큰 차이는 없지만 미국보다는 영국과 캐나다의 평균 피치가 대체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김씨 일가의 치적이나 동정에 대한 보도에서는 LHLH가 아닌 LHL의 억양을 많이 쓰고, 문장 종결에서도 LHL식 억양을 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상 발화에서는 -습니다로 발성하고, 일반적인 뉴스 보도에서는 -습니다로 발성하고, 조선노동당이나 김씨 일가 관련 보도에서는 -습니다로 발성한다는 거죠. 이는 김씨 가족의 비범함을 극대화시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의 방송교범에는 교시 관련 화술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언어를 통한 서브리미널(subliminal) 메시지의 일종 아닌가. 어쩌면 더 악질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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