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이자 과학자이자 비정규직이자 어머니인 저자의 삶이 담긴 책이다. 그가 사는 지구는 우주보다 어둡고 어두워 보인다. 별을 보는 것은 돈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일이었고 돈도 없고 기술도 없고 연구자도 없는 한국에서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그의 순수한 열정과 우주를 향한 애정에 그의 삶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2. ‘2부. 이과형 인간입니다’ 에피소드 중 해가 지는 장면을 보면 노을에 산에 오른 저자가 걱정돼 산 중턱에서 그를 기다리던 노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괜히 울 것 같고 눈물이 흘러 마음이 막혔다. 노부부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그 따뜻함을 안고 어린 왕자를 기다린다는 저자의 말 또한 따뜻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어떻게 지구에서, 삭막한 사회에서 인간인 우리가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아름답지 않을까.
3. 한국에서 여성 과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나도 그것을 저울질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지독한 이과생이었던 나는 생물과목을 꽤 좋아하고 잘했다.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시기에도 자연스럽게 생물학과를 떠올렸다. 생물들이 즐거웠고, 더 궁금하고, 궁금하고, 생명현상을 탐구하면서 인류의 발자취를 찾는 것이 의미 있어 보였다. 하지만 자연과학 전공이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워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이공계 전공 형에게 “생물학과 어때?”라고 묻자 한숨이 돌던 말이 돌아왔다. 생물학과? 거기 가서 뭐 할 거야? 뭐 먹고 살 거야? 연구원? 대학원에 가서 연구원이 되는거야? 연구원이 되자, 너 결혼하면 그냥 나와야 해. 여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나는 단숨에 생물학과를 선택지에서 지워버렸다. 물론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지금도이글을쓰는지생물학자을검색해보면생물학자가하는일은뭐에요?는 지식인의 질문에 생물학자가 하는 일은 알리지 않고 취업률이 어떻고 전망이 어떻고 연봉이 얼마라는 답변뿐이다. 숫자로 나열된 답변이 생물학자로 살아가는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천문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천문학과 나가서 뭐 먹고 살아요?’라는 말이 딱지처럼 붙는다. 이 책을 고등학생 때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p.13)’이자 우주를 동경하는 천문학자를 그때 알았다면 그 어린 나이에 생물학자가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 ‘무엇이든 하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지(p.270)’라는 생각으로 과학자의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 불안하고 위험한 임시직 연구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과학자라도 내 앞에 이런 멋진 여성 과학자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큰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늦었다. 순수학문을 향한 열정과 호기심이 가득한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꿈을 숫자로 가득한 현실에 가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문학자 심채경이 이 책을 통해 내디딘 거대한 발걸음을 통해 이 땅의 위대한 길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언젠가는 고등학생의 장래희망에 ‘과학자’가 당당히 자리 잡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응원한다.p.13/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게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에 신나게 몰입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다툼을 만들어내지 않는 위대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만 도달해도 수백 년 거리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전 우주에 과연 ‘우리뿐일까’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해.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p. 31/다시 새로움을 향해 출발해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p.66 / 스펙보다 존재 자체가 인정되는 사람 p.105 /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나 많은 한숨이 뭉쳐 있다.p. 165/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p. 183/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규정한 것이다. 하늘의 달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 보이지 않을까. p. 186/초승달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상현달과 보름달도 꽤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밤하늘에 하현달이 보일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다. 섣달 그믐은 밤을 새운 사람들,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태양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보는 그런 달이다.p.253/내가 조용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돈다. 시간당 15도, 그것은 절대 멈추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이 휘둥그레진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삶을 따라 끝없이 흘러갈 것이다. 내가 잠시 멈추는 동안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